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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야기

THEXDER는 왜 텍스더가 아니라 테그저라고 읽을까?

 

THEXDER를 아십니까?

한국에서는 MSX를 통해 알려진 명작 고전 게임으로 비행기로 변신하는 로봇을 조작해서 난관을 돌파하는 사이드뷰 액션 게임이며

실피드, 젤리아드, 루나, 그란디아 등의 작품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일본의 개발사 GAME ARTS의 데뷔작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이 게임의 제목이 '덱스터' 혹은 '텍스더' 로 알려져 많은 분들이 이렇게 읽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의 제목을 원래는 '테그저' 로 읽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여기서는 이 게임의 개발 비화를 포함해서 왜 이렇게 읽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메뉴얼에 언급된 공식 발음

 

 

이 제목의 발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은 THEXDER 게임 메뉴얼입니다.
메뉴얼의 스토리 설명에서 THEXDER 영어 글자에 루비로 일본어인 테그자(テグザー)가 발음 표기되어 있으며 별도 주 설명에는

"미래의 발음은 현재와 다소 다르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표기가 이렇다"

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끝말인 '자' 가 '저'가 된건 아무래도 ER로 끝나는 단어이다 보니 'ㅓ' 발음이 없는 일본어 표기를 고려해서 순화시킨 것으로 보이네요)


다시 말해서 THEXDER 게임 세계관인 미래시대에는 영어를 읽는 발음이 현재와 다르기 때문에 THEXDER를 텍스더가 아닌 테그저라고 읽는다는 것이 이 게임의 설정에 있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이걸 보고 일본에서 맥도날드를 '마쿠도나루도' 라 읽는 것처럼 일본어의 영어 발음이 안좋으니까 '테그저' 라고 표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도 계실 지 모르겠는데 그건 좀 틀립니다.
만약 일본에서 THEXDER를 영어 발음 그대로 읽었다면 '테쿠스다(テクスダー)' 가 되었을 것입니다.
비슷한 예로 미국 드라마 덱스터(DEXTER)는 일본에서는 '데쿠스타(デクスター)' 라고 읽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THEXDER가 시에라 온라인을 통해 IBM-PC DOS 용으로 이식되었을 때 영문 메뉴얼도 찾아봤는데 여기에서는 특별히 발음이 다른 것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유튜브 등에서 영어권 사람들이 이 게임을 언급할 때는 그냥 영어식 발음인 '텍스더' 라 부르고 있는것 같습니다.

 

 

2. 이 이름이 지어진 유래

 

여기까지는 게임 내 설정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러면 왜 이렇게 특이한 발음의 제목이 만들어졌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게임이 나온 지 14년 후인 1999년 어느 날, 일본 익명 커뮤니티인 2채널(2ch)에 테그저 개발자를 자칭한 익명의 사람이 '테그저 100가지 비밀' 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개발 비화를 100개의 글로 쓴 적이 있었습니다.
(해당 글의 전문은 링크 블로그 글을 참고해주세요.)

이 내용 중 1번 글에 해당되는 내용이 아래와 같았습니다.

"테그저 이름의 유래는 근원이 된 게임 [세우스] [에조아] [그로브] 의 합성어입니다."

 

다시 말해 테그저라는 제목이 이 게임을 만드는데 모티브가 되었거나 영감을 얻은 게임들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만들었다는 것이죠.

그럼 저 게임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테세우스(THESEUS)는 1984년에 나왔던 MSX 초창기 명작 게임 중에 하나입니다.
이 게임에서는 인간형 캐릭터를 조작하는 전방향 스크롤 사이드뷰 시스템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적 캐릭터 중에 테그저에 나오는 적과 비슷한 캐릭터도 있고요.

 

 

 

에그조아(EXOA)는 1983년에 일본 샤프 X1용으로 나온 게임이며 비행기를 조종하는 8방향 스크롤 슈팅 게임입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아무리 뜯어봐도 테그저와의 공통점은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여기서 말한 에그조아는 로봇 대전 게임으로 장르가 바뀐 에그조아2를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MSX유저들에게는 '워로이드' 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할 것 같은데요
사실 원작은 '에그조아2-워로이드' 라는 이름으로 나왔는데 이를 '워로이드' 라는 이름으로 MSX로 이식한 것입니다.

이 게임에서는 사이드 뷰 시점의 로봇 액션이라는 컨셉을 테그저에 가져온것 같습니다.

MSX판에는 없지만 X1판에서는 비행기가 로봇으로 변신하는 데모도 등장하고요.

 

 

 

그로브다(GROBA)는 1984년에 오락실용으로 나온 게임입니다.
유명게임 '제비우스'에 나오는 적 전차 캐릭터의 이름이기도 하며 이 전차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스핀오프 게임에 해당됩니다.

이 게임에서는 에너지 게이지의 색깔 구분과 보호막 운용 방법(일정 에너지를 소모하여 보호막을 사용) 등을 따 온 것으로 보입니다. 폭발 이펙트나 오색찬란한 빔 모양도 테그저와 비슷한 느낌이 나고요.

 

 

이렇게 정리해보면 한가지 의문이 생기는 것이,
세우스(THESEUS), 에조아(EXOA)까지는 이름을 합성했다는 것은 잘 알겠는데 그로브(GROBDA) 는 어떻게 '다' 에서 '자' 가 되었고 DA에서 DER 로 되었는지는 의문이 남습니다.
'자' 로 바뀐 부분은 에그조아의 X 가 뒷 글자 발음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측되기도 하고 원래는 THEXDA로 하려다가 별로 멋있지 않아 보여서 THEXDER로 바꾼 건지는 모르겠는데 이 점은 개발비화에서도 언급된 부분은 없었네요.

 

 

 

3. THEXDER 개발자 이야기

 

앞에서 언급한 테그저 100가지 비밀이라는 것과 관련해서 이 글을 쓴 개발자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테그저를 개발한 메인 개발자는 고다이 히비키(프로그램, 음악 담당), 우에사카 사토시(그래픽, 아트웍 담당) 이 두 사람이었습니다.

이 중 고다이 히비키는 MSX게임인 라이즈 아웃(한국에서는 '위로위로'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죠)을 개발하기도 했으며 앞에 언급한 테세우스에도 참여했었다고 하네요.

 

라이즈 아웃의 타이틀 화면에서 개발자 이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테그저 100가지 비밀 글에는 주로 그래픽 관련 이야기가 많았고 개발자 중 한 명인 고다이 히비키를 은근히 까는 내용도 있어서 이 글을 쓴 사람은 또 한명의 개발자인 우에사카 사토시가 되겠습니다.
(훗날 나온 본인의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니 '공식적으로는 그걸 쓴 것은 내가 아니라는 설정임(웃음)' 같은 말을 한 적도 있었네요^^)

 

이 둘이 직접 작업한 것은 원작인 PC-8801판이며 MSX판은 컴파일에서 이식했지만 위 스샷처럼 MSX판에서도 이 두 사람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테그저 라이센스 표기에는 두 사람의 이름을 함께 표기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는 것 같네요.

 

당시 두 개발자의 모습 (왼쪽이 우에사카)
2017년 때 두 개발자의 모습. (왼쪽이 우에사카) 세월이 느껴지네요...ㅠㅠ

테그저 이후 이 둘의 행보는 크게 갈렸는데

고다이 히비키는 실피드, 젤리아드 개발에 참여하다가 회사와의 불화로 게임아츠를 그만두고 '테크니컬 아츠' 라는 회사를 새로 세워서 현재까지 회사를 잘 꾸려오고 있다고 하며
(여담으로 이 회사에서 과거에 아이폰용으로 라이즈 아웃 리메이크를 출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에사카 사토시는 테그저 후속작인 파이어 호크를 비롯해 실피드, 아리시아 드라군, 루나 실버스타 등 여러 게임아츠 작품 개발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파이어 호크의 엔딩에서 볼 수 있는 개발진 리스트에는 우에사카 사토시의 이름은 있지만 고다이 히비키의 이름은 없습니다...

 

 

이와 같이 게임 제목 하나로 여러 흥미로운 개발 비화를 알 수 있어서 이렇게 정리해서 소개해봤습니다.